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무엇도 없다. 멋 있게 살아야 한다는 무엇도 없다. 다만 이 세상에 왔으니 무언가 할 뿐이다. 힘든 자들에게 자그마한 힘이 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풍류니 뭐니 하는 것도 나에겐 사치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날더러 한량이라 한다. 나는 다만 ‘진정한 나’를 만나러 나만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뿐이다. 내면의 유랑객이다. 이 시대 진정한 김삿갓을 꿈꾼다.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삿갓 아래 감춘 김삿갓. 하지만 그는 삿갓 밑 세[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삿갓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김삿갓 시 ‘나는 청산을 마시노니(靑山倒水來)’를 좋아한다. ‘쥐코밥상/ 멀건 죽 그릇에/ 구름이 얼비치네// 주인이여/ 미안타 마오/ 나는 청산을 마시노니….’ 비록 얻어 먹는 처지지만 주인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청산을 닮았다. 양씨의 관심사는 끝간 데 없다. 보통사람들의 진실된 삶을 외로운 나무나 동물의 사진을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에 집 한 채가 놓인 사진 풍경은 현대판 세한도[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시적 상상력과 오류’를 연재한 바 있다. 명시에서 발견되는 기술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기본적인 생물학 지식에도 위배되는 내용이 허다했다. 요즘엔 시인들이 발표 이전에 감수를 받을 정도다. 문학이건 의학이건 그는 세상을 보는 공식은 같다고 말한다. 환자를 보는 눈으로 시를 보고, 시를 보는 눈으로 환자를 본다. 시간이 아까워 골프를 접은 그에게서 시와 그림, 음악, 사진은 여기(餘技)가 아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자 사회를 향한 관심이다. 신[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자기중심적이 되고 짜증만 나게 된다는 것.◀타버린 성냥개비를 그린 그림. 버려진 것에 대한 애착이 담겨있다. 산에 오르던 그가 길에 나뒹구는 나뭇등걸을 하나 주워 배낭에서 칼을 꺼내 조각을 시작한다. 손끝에서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된다. 나무뿌리는 달팽이가 됐다. 돌이나 나무를 보면 그 속에서 형태가 보이니 칼로 그것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한시도 멈춤 없이 시간을 게릴라식으로 이용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곳에 머물기를 거부했던 김삿갓이 스친다. wansik@se[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실린 시 ‘맥주깡통’이다. “마지막 거품 털어내면/ 더 가벼워지는 껍데기/ 이젠 팽개쳐도 된다/ 손아귀로 쭈그려도 된다/ 비명은 한 번뿐/ 돌멩이로 내리쳐도 좋다/ 짓밟아도 좋다/ 비좁은 상자/ 싸늘한 냉장고에서/ 온몸으로 버텨온 인고를/ 알아 줄 것도 없다/ 하물며 그 옛날/ 깡통지붕 깡통자동차 따위야/ 들먹여 무엇하리/ 엿장수 발길에 채는/물거품이다/ 빈 껍데기다” 삶을 털어내면 누구나 빈껍데기라는 사실이 가슴을 때렸던 것이다. 그는 ‘현대시학’에 3년간[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ROTC 4기로 임관해 대위로 제대한다. 종갓집 장남으로 집안을 지켜야 한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객지 생활을 접고 고향에 정착했다. 호구지책으로 그는 34세의 나이에 다시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다. 생업은 한의사이지만 정신적 갈구는 시로 달랬다. 세상사를 시로 풀어 사람들과 공유했다. 시가 사람들에게 감동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업이지만 시를 통해서도 그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진료가 끝나면 그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시집 한 권을 선물한다[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를 연상시킨다. 사우나장 창밖에 비친 비둘기도 그의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한겨울 해뜰 무렵 따사로운 햇살과 사우나 훈김에 몸을 녹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노숙자다. 아름다운 세상보다 삿갓 아래 이 시대의 고된 짐을 지고 있는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김삿갓이 그랬듯이. 멜론 껍질과 쓰레기 비닐봉투, 이쑤시개와 화장지로 바다에 떠 있는 배의 풍경을 연출해 찍기도 했다. 그는 그림도 그린다. 포도와 수박 껍질, 타버린 성냥개비, 도자기 조각, 소라 껍데기 등 [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 납설수, 감란수 등도 현대의학에서 점차 주목받고 있다. 그가 환경운동에 나서는 이유도 물이 제대로 대접받게 하기 위해서다. 좋은 물과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모든 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국민건강을 위해 유휴 농경지에 차를 재배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그는 순천만 바닷가를 자주 간다. 그는 차가 없다. 면허증은 20년 넘게 장롱에서 잠자고 있다. 버스 등 남의 차를 타야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 차를 타면 [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체적 질병은 사회적 질병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환자들은 그의 시와 그림에 마음을 연다. 치료의 시작인 셈이다. 김삿갓의 시가 음풍농월이 아닌 것처럼.
새벽이면 그는 1시간 거리의 찬샘이골로 샘물을 길러 간다. 오가며 명상도 하고 시상도 떠올려 본다. 몇 권의 시집이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그는 ‘물을 물로 보는 세상’을 걱정한다. 서양의학과 달리 동양의학은 약전에 물을 중시한다. 동의보감에 언급된 정화수, 한천수, 국화수[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대한 노래다. 간간이 모임에서 연주하면 사람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망년회 땐 그의 연주를 듣고 엉엉 울어버린 친구도 있었다. ‘순천시민의 노래’도 그가 작사했다.
학창 시절 음악 평어가 늘 ‘가’여서 별명마저 음악가인 그가 음악에 매달린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에 대해서 하잘것없었던 자신도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진정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자만이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신념에서다. 그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 최근의 어느 환자는 그의 시집을 펼쳐 들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깜짝 놀랐다. 어느 지방지에 실린 그의 시 한 편을 스크랩해 간직하던 것을 속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자살을 하려는 순간, 신문지 조각의 시 한 편이 눈에 마주쳤다. 중도에서 자살 행위를 멈췄다. 몸 회복을 위해 그의 한의원을 찾은 것이다. ◀산길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로 만든 조각품. 주위사람들에게 액세서리로 선물한다. 환자가 읽은 시는 바로 그의 시집 ‘작은 풀잎 하나’에[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버려지는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즉석에서 빈 소주병을 화폭에 옮기기도 한다. 남들이 안 찾아보는 것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맹이 없는 그림이라 말한다. 지위와 명예에만 초점을 맞춰 그렇지 못한 이들을 쓸모없다 말하는 꼴이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것에만 눈길을 준다. 벌레 먹이가 되고 분해돼 거름이 되니 세상엔 못쓸 것이 없다. 그의 그림은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착이다.
그는 술 한 잔 후 병뚜껑을[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지 누비고 다니다가 서울 어느 고서점에서 겨우 찾아낸, 1939년 학예사에서 출간한 김삿갓 시집도 끼여 있다. 러시아 도서관에서 찾아낸 한성도서 발행 김삿갓 시집은 이응수씨가 증보판으로 낸 책이다. 북한에서 1956년 이응수씨가 펴낸 ‘풍자시인 김삿갓’(평양국립출판사)도 있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내년엔 현대어로 번역한 김삿갓시집을 낼 예정이다. 김삿갓시집 원전 연구로 순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그의 연구 열정은 남다르다. 그는 작품 연구를 통해 김[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상을 시로 다그쳤다. 위선에 찬 현실을 풍자하고, 기방의 기생까지 고단한 인생들은 하심(下心)으로 품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로 떠돌며 그 하찮음을 대변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런 모습이다. 비록 전국을 떠돌지는 못해도 내 주변의 보잘것없는 일상에 산야를 누비듯 눈길을 주고 싶다. 전남 순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양동식(61)씨. 그의 진료실 한켠에는 비밀스러운 방 하나가 있다. 김삿갓 관련 책들이 빼곡한 그만의 방이다. 2년여 강원에서 제주까[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펴서 작은 새를 만든다. 가고 싶은 데 다 가보픈 꿈을 거기에 담는다. 그의 방에 줄지어 새들이 앉아 있다. 그가 그곳에서 플루트를 연주한다. 자신이 직접 작사한 노래 ‘잃어버린 계절’이다. ‘버드나무는 어디로 갔는가/ 물오른 가지 꺾어 필리리// 봄소식 전하던 동무들 다 어디로 가고/ 억새풀만 파란 언덕// 산비둘기 우는 소리에/ 온 산골짜기마다// 피는 진달래 홀로 봄날/ 홀로 봄날 봄날 저무는가’. 풀피리가 상징하듯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편완식의 新풍류기행]''유랑시인'' 한의사 양동식씨
 |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무엇도 없다. 멋 있게 살아야 한다는 무엇도 없다. 다만 이 세상에 왔으니 무언가 할 뿐이다. 힘든 자들에게 자그마한 힘이 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풍류니 뭐니 하는 것도 나에겐 사치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날더러 한량이라 한다. 나는 다만 ‘진정한 나’를 만나러 나만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뿐이다. 내면의 유랑객이다. 이 시대 진정한 김삿갓을 꿈꾼다.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삿갓 아래 감춘 김삿갓. 하지만 그는 삿갓 밑 세상을 시로 다그쳤다. 위선에 찬 현실을 풍자하고, 기방의 기생까지 고단한 인생들은 하심(下心)으로 품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로 떠돌며 그 하찮음을 대변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런 모습이다. 비록 전국을 떠돌지는 못해도 내 주변의 보잘것없는 일상에 산야를 누비듯 눈길을 주고 싶다.
전남 순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양동식(61)씨. 그의 진료실 한켠에는 비밀스러운 방 하나가 있다. 김삿갓 관련 책들이 빼곡한 그만의 방이다. 2년여 강원에서 제주까지 누비고 다니다가 서울 어느 고서점에서 겨우 찾아낸, 1939년 학예사에서 출간한 김삿갓 시집도 끼여 있다. 러시아 도서관에서 찾아낸 한성도서 발행 김삿갓 시집은 이응수씨가 증보판으로 낸 책이다. 북한에서 1956년 이응수씨가 펴낸 ‘풍자시인 김삿갓’(평양국립출판사)도 있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내년엔 현대어로 번역한 김삿갓시집을 낼 예정이다. 김삿갓시집 원전 연구로 순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그의 연구 열정은 남다르다. 그는 작품 연구를 통해 김삿갓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김삿갓 시 ‘나는 청산을 마시노니(靑山倒水來)’를 좋아한다. ‘쥐코밥상/ 멀건 죽 그릇에/ 구름이 얼비치네// 주인이여/ 미안타 마오/ 나는 청산을 마시노니….’ 비록 얻어 먹는 처지지만 주인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청산을 닮았다.
양씨의 관심사는 끝간 데 없다. 보통사람들의 진실된 삶을 외로운 나무나 동물의 사진을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에 집 한 채가 놓인 사진 풍경은 현대판 세한도를 연상시킨다. 사우나장 창밖에 비친 비둘기도 그의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한겨울 해뜰 무렵 따사로운 햇살과 사우나 훈김에 몸을 녹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노숙자다. 아름다운 세상보다 삿갓 아래 이 시대의 고된 짐을 지고 있는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김삿갓이 그랬듯이.
멜론 껍질과 쓰레기 비닐봉투, 이쑤시개와 화장지로 바다에 떠 있는 배의 풍경을 연출해 찍기도 했다. 그는 그림도 그린다. 포도와 수박 껍질, 타버린 성냥개비, 도자기 조각, 소라 껍데기 등 버려지는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즉석에서 빈 소주병을 화폭에 옮기기도 한다. 남들이 안 찾아보는 것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맹이 없는 그림이라 말한다. 지위와 명예에만 초점을 맞춰 그렇지 못한 이들을 쓸모없다 말하는 꼴이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것에만 눈길을 준다. 벌레 먹이가 되고 분해돼 거름이 되니 세상엔 못쓸 것이 없다. 그의 그림은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착이다.
| 그는 술 한 잔 후 병뚜껑을 펴서 작은 새를 만든다. 가고 싶은 데 다 가보픈 꿈을 거기에 담는다. 그의 방에 줄지어 새들이 앉아 있다. 그가 그곳에서 플루트를 연주한다. 자신이 직접 작사한 노래 ‘잃어버린 계절’이다. ‘버드나무는 어디로 갔는가/ 물오른 가지 꺾어 필리리// 봄소식 전하던 동무들 다 어디로 가고/ 억새풀만 파란 언덕// 산비둘기 우는 소리에/ 온 산골짜기마다// 피는 진달래 홀로 봄날/ 홀로 봄날 봄날 저무는가’. 풀피리가 상징하듯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노래다. 간간이 모임에서 연주하면 사람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망년회 땐 그의 연주를 듣고 엉엉 울어버린 친구도 있었다. ‘순천시민의 노래’도 그가 작사했다. |
원문기사모두보기
Trackback Address :: http://mercedes-benz.tistory.com/trackback/58729
|